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, 135번째 6·25 전사자 신원 확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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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, 135번째 6·25 전사자 신원 확인

2009년 강원 인제서 발굴 유해, 고 김영인 결사유격대원 확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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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 DNA 시료 채취 유해 중 신원확인 가능성 높은 174건에 대한 유해 재검사 실시
 
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발전된 유전자 검사 기법을 사용해 지난 2009년 9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故 김영인 결사유격대원으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.
 
고 김영인 대원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35번째이며, 결사유격대원으로 참전한 전사자 중 신원확인이 된 사례는 두 번째다.
 
고인의 신원확인은 유전자 검사 기법 중 핵 검사(STR : Short Tandem Repeat) 기술이 16개 좌위에서 23개 좌위로 분석 가능하게 발전한 것을 적용해 가능했다.
 
국유단은 2013년 이전에 16개 좌위의 핵검사를 실시한 유해 중 신원확인 확률이 높은 유해 174건을 대상으로, 1차 50건에 대해 23개 좌위 핵 검사 시료를 채취해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검사를 의뢰하였다.
 
이 중 고 김영인 대원의 아들 김해수(현재 75세) 씨가 등록했던 DNA를 통해 최종 신원을 확인하였다. 신원확인 확률이 높은 유해 174건 중 ‘고 김영인 대원’의 신원확인은 첫 사례이며, 앞으로도 신원확인이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.
 
고 김영인 대원은 1951년 1월 말, 제11연대 소속으로 6·25전쟁에 참전했다가 같은 해 2~3월 경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.
 
1951년 1월 4일 육군본부는 예비병력 가운데 일부를 차출하여 직할대인 ‘결사유격대’를 창설하였다. 부대는 제 11연대, 제 12연대, 제 13연대, 제 15연대, 제 16연대 및 특별대로 편성되었으며, 1951년 1월 말부터 4월 초까지 60일 간 강원도 영월·평창·인제 등지에서 활동했다.
 
고 김영인 대원은 11연대 소속으로 설악산 일대 침투기동 간(1951년 2~3월) 매복한 인민군에 의한 총격으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.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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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 김영인 대원은 강원도 인제군에서 완전유해로 발굴되었으며, 무궁화 무늬 단추, 전투화 등을 포함한 14점의 유품이 함께 발견되었다.
 
고인은 1923년 1월 29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.
 
그 후, 18세에 결혼하여 슬하에 4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. 직장생활을 하던 중 6·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들을 피난시킨 후 28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.
 
전투에 참가하기 직전, 피난길에 있던 아내가 막내를 출산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고인은 자전거를 타고 한 숨에 달려와 아내를 보살핀 후 가족들에게 건빵을 가득 챙겨주고 홀연히 떠났다. 안타깝게도 그 뒷모습이 가족들에게 고인의 생전 마지막 순간이 되고 말았다.
 
고인의 아들 김해수씨는 “내가 7살 때 아버지의 전사소식을 들은 기억이 남아있다. 자라면서 아버지가 안 계신 서러움에 많이 힘들었지만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는데, 아쉽게도 지난해 돌아가시게 되어 아버지를 찾게 된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너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.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난다”고 말했다.
 
국방부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친 후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통해 유해를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.
 
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고 김영인 대원의 신원확인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6·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 다양한 기법을 지속 적용하고,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.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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